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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유죄 판결의 또다른 의미 - 전우용 칼럼

지난 2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마성영 김정곤 장용범 부장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일부 혐의가 무죄라고 판단하면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사항은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혐의와 자녀 입시 또는 학업 비리, 딸이 받은 장학금이 사실상의 뇌물이라는 혐의였다.

 

자녀 입시 비리로 범죄자가 된 조국

 

재판부는 법정에서 ‘반성하지 않는다’며 피고인 조국을 준엄히 질타했고, 대다수 언론은 ‘사필귀정’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유죄판결은 한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정하는 행위이며, 법원이 ‘유죄’라고 판결하는 순간부터 ‘범법자’는 ‘인권이 없거나 제한되어 마땅한’ 인간으로 취급된다. 법적 처벌이 종결된 뒤에도 사회적 처벌은 계속된다. ‘전과자’라는 딱지는 낙인처럼 몸에 붙어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이제 조국 부부와 그 자녀들의 운명은 ‘죄를 짓고도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범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 죄목이라는 것들이 상식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첫째, 아들이 ‘학원폭력’ 피해로 말미암아 1주일간 결석했는데 서류에는 ‘인턴 준비’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둘째, 체험학습 또는 인턴활동 확인서 기재 내용이 실제보다 과장되었거나 실제 수행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조국이 아들의 외국 대학의 인터넷 퀴즈 시험을 도와준 것이 해당 학교의 성적처리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넷째, 조국 딸이 의전원 입학 이후 계속 받아온 장학금 중 아버지가 공직에 발탁된 이후에 받은 돈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민정수석 시절 조국의 감찰 중단 지시는 타인의 권한을 침해한 행위라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 중 학창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식 둔 부모 중 학부모가 아니었던 사람도 없다. 학교도 사회의 축소판이라 그 안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동급생들에게 일진, 양아치, 범생이 등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있으며, 폭행, 절도, 사기, 명예훼손, 모욕이라고 해도 좋을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학교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 인류 보편의 관행이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학교 자체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교육자치’의 기본 원칙이다. ‘형벌’도 대개는 학생 자치회나 학교 운영회의 ‘내부 징계’로 마무리된다. 시험 중 학생의 부정행위를 적발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교사나 교수는 없다. 결석한 학생이 사유를 거짓말로 둘러댔다고 검찰에 고발하는 교사나 교수도 없다. 체험학습 보고서가 허위이거나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경찰에 신고하는 교사도 없다. 자식의 숙제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학부모를 검찰에 고발하는 교사도 없다.

 

이른바 ‘가정환경’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생활 태도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 자체가 ‘생래적 불평등’ 또는 ‘태생적 불공평’ 때문에 나온 말이다. 모든 아이는 부모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부모가 만들거나 사 온 음식을 먹고 부모가 사준 옷을 입으며, 부모가 보내주는 학원에 다니면서 자란다. 아이들의 교우 관계도 상당 부분 부모와 친척들의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집에서 책 읽는 부모를 가진 아이,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만 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아예 부모가 없는 아이, 친척 중에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 이른바 ‘사짜 돌림’이 즐비한 아이와 친척들이 전부 가난한 노동자이거나 실업자인 아이, 이들 사이에 ‘차이’나 ‘격차’가 생기는 것은 ‘자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차이를 완전히 소멸시키겠다고 어려서부터 ‘집체교육’을 시켰던 사회주의 국가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들은 가정환경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런 차이를 정당화해 왔다.

 

학교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단죄한 재판부 

 

태어난 직후부터 부모의 각별한 가르침을 받고 한 달에 수백 만원씩 내야 하는 유치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 입학 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달 수백~수천만 원씩 들어가는 ‘유명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성적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학업 과정과 성장 과정이 달라지는 현상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 우리 사회에 이 불공정과 불공평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 간 경제적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자는 생각 자체를 ‘공산주의’로 취급하는 문화는 그 해결 방안을 향한 진지한 접근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 일가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엄격한 ‘도덕적 근본주의자’들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비난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제껏 학생의 시험 부정행위 여부, 체험학습 보고서의 과장 기재 여부, 대학 총장 명의 표창장의 진위 여부, 공직자 자녀가 받는 장학금의 적절성 여부, 부모가 자녀 숙제를 도와주는 행위의 불법성 여부를 따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적발하고 처벌할 권한은 수사기관이나 사법부가 아니라 학교와 교사, 교수들에게 있었다. 나경원 자녀의 대학 성적 ‘수정’ 문제에 대해 검찰이 언명했듯이,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교수 또는 강사의 재량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왜 조국 자녀가 다닌 학교의 교사와 교수들에게는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고 검찰과 사법부가 개입했는가? 이런 행위야말로 학교와 교사, 교수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른바 ‘감찰무마죄’에 대한 판결도 이해하기 어렵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어떤 프로젝트를 열심히 준비하던 직원이 어느날 갑자기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일은 아주 흔하다. 이 직원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은 내 권한이며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는데, 상사의 부당한 지시로 계획이 틀어졌다”고 상사를 고발하는 것이 가능한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근원부터 다시 살피는 것이다. 애초에 한국 검찰과 언론은 조국 일가가 ‘사모펀드’로 거액의 대선자금을 조달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 사회 부유층의 고질병인 ‘부동산 투기’ 의혹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모펀드, 부동산 투기는 물론 뇌물이나 그밖의 ‘권력형 비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조국이 민정수석이나 장관 시절에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 딸에게 표창장 하나 주십시오”라고 했다면, ‘권력형 비리’에 해당하겠지만, 그걸 굳이 위조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권력을 사적으로 행사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 한 통화로 받아내지 번거롭게 위조하지 않는다. 이렇다 할 ‘권력형 비리’를 발견하지 못한 검찰은 수십 차례의 압수수색으로 ‘학교와 가정의 문제’를 ‘사법적 문제’로 전환시켰다. 그로부터 3년 여 뒤, 사법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기득권 엘리트에 저항할 때 범죄되는 세상

 

물론 이번 판결로 각 가정이 자녀 교육에 투입하는 ‘사회적 자본’의 배분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모가 자식 숙제 도와줬다고, 체험활동 보고서 내용이 과장되었다고, 부모가 공직자가 되었는데 장학금을 계속 받았다고, 대학 총장에게 표창장 받았다고, 보통사람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입시학원에 수백만 원씩 내고 자식 자기소개서 대필 시키는 행위, 대필 작가에게 수백만 원씩 주고 자식 이름의 표절논문을 얻어 해외 학술지에 게재하는 행위, 대학 강사에게 전화로 압력을 넣어 자기 자식 성적 고치게 하는 행위도 아무 문제가 안 되는데, 저런 일들이 왜 문제가 되겠는가? 조국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죄판결을 받기는커녕 기소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퇴직금 조로 50억 원을 받아도 괜찮은 나라에서 장학금 600만 원이 문제겠는가?

 

재판부가 이번 판결로 우리 사회에 던지려 한 메시지는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기득권 엘리트 지배체제에 도전하려 들지 말라는 것. 조국은 기득권 엘리트 지배체제가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해 선택한 표본일 뿐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엉터리 법을 만들고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내 ‘권력에 밉보인 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관행으로 묵인되었던 일들, 사소하게 취급되었던 일들, 학교나 가정에 ‘재량’으로 맡겨두었던 일들, 기타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다 끄집어 내어 ‘법’으로 단죄하면 된다. 이제 엘리트 기득권 체제에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자녀 숙제를 도와주거나 자기소개서를 봐 주는 일은 물론, 무단횡단을 해서도, 불법주차를 해서도, 노상방뇨를 해서도, 흡연금지 구역에서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된다. 나중에 기득권 엘리트들에게 밉보이는 일을 하면, 그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까발려져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불공평하다고 항변하면 그들은 이렇게 나무랄 것이다. “죄 지은 것 맞잖아?”라고.

 


 

 

조국 유죄 판결의 또다른 의미 - 더칼럼니스트

지난 2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마성영 김정곤 장용범 부장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일부 혐의가 무죄라고 판단하면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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