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litics story

검찰 공화국! 어떻게 만들어졌나?? - 검찰 공화국의 태동

한국 검찰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 권한을 쓸것인지 말것인지를 검찰 스스로 결정한다.

전세계 유례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보니, 현재와 같이

검찰 권력이 유지되고 남용되는 검찰 공화국이 만들어 졌다.

 

현재의 검찰 공화국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통치시기에 확고해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전략적 유연성 문제라든가

이라크 파병,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사건 등 정치적 의제들이 하나같이 사법적 판단을 통해 처리되면서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사법에 의한 정치의 식민화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 두 정부는 그러한 사법만능의 틀을 검찰 권력을 통해 재편하였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검찰공화국의 체제를 만들어냈다(한상희, 2019).

 


검찰 공화국의 태동

1. 자유당 정권과 정적 제거의 조력자 검찰

 

자유당은 1951년 12월 17일에 대한민국에서 창당된 보수정당이며 대통령 이승만을 당수로 하였으며, 장택상, 이범석, 장면,

배은희, 이기붕, 함태영, 이갑성, 백성욱이 주요 간부였다(위키백과). 

이들 정권은 정적 제거의 조력자 역할로 검찰을 활용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오제도 등 '반공검사'의 득세와

남로당원 색출 등 공안정국 지휘였다. 특히, 반공검사들은 3.15 부정선거마저도 '북한의 조종'으로 몰고 갔다.

 

2. 유신 정권과 독재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 검찰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이 선언에서 4가지 비상조치를 발표하고 이러한 비상조치 아래 위헌적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로 1972년 12월 27일에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했으며, 이때의 헌법을 유신 헌법이라 하며, 유신 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 체제, 유신 독재,

유신 정권이라고 부른다(위키백과). 이 시기에 검찰은 신직수, 김기춘과 같은 정치 검찰의 활약을 통해 검찰 조직의 관료화를

본격화 하였으며,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한 충직한 하수인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유신정권에서 검찰은 신직수와 김기춘 검사 등을 중심으로 중앙정보부 등과 연계, 국민을 억압하였으며, 인혁당 사건,

동백림사건 등 각종 공안사건을 통해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한상희, 2019).

 

3. 군사 정권과 인간 파괴를 조장한 법률 기능공

쿠데타를 통해 정부와 입법부를 군인들이 장악하는 권위 주위 독재 정부를 군사 정권으로 통칭한다(나무위키).

군사 정권 시기의 검찰은 민주화 탄압을 위해 앞장 섰으며, 인권 파괴, 사건 조작 및 은폐를 통해 검찰 권력을 확대해 나갔다.

 

4. 문민 정부와 검찰 공화국 공고

87년 이후 검찰은 군사정권 퇴진으로 생긴 힘의 공백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은 하나회 해체와

5공 비리 청산을 수행하며 권력을 강화했다(최병호, 2019).

특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김영삼 대통령 임기 첫 해인 1993년 한 해에만 동화은행, 슬롯머신, 율곡사업 등 대형 비리사건을

잇달아 수사했다. 서울지검은 12ㆍ12 사건과 5ㆍ18 사건을 수사해,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이 때부터

‘대형비리 사건 수사=검찰’이라는 공식이 굳어졌고, 특별수사 중핵인 대검 중수부는 전성기를 구가한다(윤주영, 2019).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 때는 검찰이 권력에 예속되어 권력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문민 정부 이후부터 

검찰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참고자료 

한상희, 2019. 검찰은 어떻게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게 되었나, 참여연대.

김희수 외, 2011.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삼인.

최병호, 2019. "'윤성열호' 검찰공화국 반복", 뉴스토마토.

윤주영, 2019. [영욕의 검찰사] 권력 시녀-검찰공화국-기소독점 파괴, 한국일보.

 

 

 

 

 

 

 

 

 

 

 

 

 

 

728x90